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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지식과 감성 : 아리스토텔레스의 아크라시아

작성 : dang32g / 2010-03-29 00:42 (수정일: 2018-01-19 13:47)

(2차 세미나)

지식과 감성 : 아리스토텔레스의 아크라시아

 

정용환(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목차>

 

1. 서론

2. 플라톤: 지식의 확실성을 위하여

3. 아리스토텔레스의 아크라시아

4. 아크라시아의 함의

 

 

1. 서론

 

인간은 유덕한 삶을 추구하면서도 덕의 실행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악한 사람은 금수보다 천만 배나 더 악한 일을 한다.” 인간이 덕의 실행에 실패하거나 악으로 귀착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인간이 덕의 실행에 실패하는가에 관한 논의가 플라톤의 ࡔ국가ࡕ와 아리스토텔레스의 ࡔ니코마코스 윤리학ࡕ에서 풍부하게 나온다. 유덕한 삶을 윤리학의 목표로 삼았다는 점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가 서로 일치하지만, 유덕한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설명할 때에는 두 사람의 입장차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덕의 실행과 관련하여 플라톤이 이데아론에 근거해 이성적 지식의 정당성과 확실성을 밝히는 데에 매달린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확실하다고 여겼던 이성적 지식이 감각적 경험 과정에서 쉽게 부서질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에 대한 인식이 덕의 실천을 담보하지 못할 수 있음을 제기하면서 실천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탐구한 것은 일면에서는 옳고 다른 일면에서는 잘못이다. 즉 모든 덕이 결국 실천지라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고, 실천지 없이는 덕이 존립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지당한 말이다”고 하면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철학을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덕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문제가 ‘덕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계될 수밖에 없음을 함축하며, 그의 실천지에 대한 강조는 감성적 욕망과 관련되어 있는 “아크라시아” 즉 “의지의 박약”에 대해 풍부한 논의를 생산해낸다.

이 글의 목적은 플라톤의 ࡔ국가ࡕ 제10권과 ࡔ니코마코스 윤리학ࡕ 제7권을 중심으로 두 철학자가 제시하는 인간의 감성적 욕망에 대한 입장차를 검토함으로써, 인간의 지식 확장에서 감성이 하는 역할을 밝히는 데에 있다. 환언하자면 이 글에서 던지는 물음은 ‘감성적 욕망이 참된 지식을 위태롭게 하는 부정적인 것에 머물 뿐인가 아니면 참된 지식의 획득에 기여하는가?’이다. ▲ 가령 시칠리아 섬 아크라가스 참주 팔라리스(Phalaris)는 청동 황소에 사람을 산채로 넣고 불에 구우면서 황소 소리를 닮은 비명소리를 즐겼다고 전한다. 또한 고대 흑해 연안의 어떤 종족은 사람의 고기를 먹거나 자신들의 자식을 서로 선물로 교환하여 잔치를 열어 잡아먹었다고 한다. 이러한 종류의 감각적 욕망에 대해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가령 어떤 당뇨병 환자가 처음 보는 진기한 음식에 대해 의사의 조언을 무시하고 당분의 유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식욕을 충족한다고 해보자. 이러한 종류의 감각적 욕망에 대해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또한 갈릴레오 갈릴레이 시대에 일부 사람들은 로마 교황청이 천동설을 강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정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를 수 없었다. 이러한 종류의 욕망에 대해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