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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시대를 겪는 감성

작성 : dang32g / 2010-03-29 00:53 (수정일: 2018-01-19 13:49)

(5차 세미나)

시대를 겪는 감성

: 4.19혁명 이후 작가들의 미적 태도의 분화

 

한순미(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

 

 

 

<목차>

 

1. 시대문턱으로서의 4.19혁명

2. 불협화음 : 상처와 글쓰기

3. 전통을 분해하는 감성 : 새김과 변형

4. 경계인의 알레고리 : 처용과 아기장수

5. 데칼코마니

 

 

1. 시대문턱으로서의 4.19혁명

 

혁명은 그것이 완성의 형태이든 미완의 것이든 한 시대의 감성에 잔잔한 파문(波紋)을 새긴다. 하지만 혁명은 일어나자마자 그 순간의 사실성과 결별한다. 이미 지나간 과거로서의 혁명은 사실 자체로 어떠한 의미도 지닐 수 없는 텅 빈 기표가 된다. 혁명의 순간만이 아니라 어느 시대도 고정된 개념으로 포착할 수 없다. 다만 우리의 의식 안에서 어느 한 시대를 개념화하고 규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의 역사적 텍스트로 있는 시대경험은 그 시대를 직접 살고 겪은 자들의 것과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 순간을 겪었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그 순간의 구체적인 경험으로부터 한껏 물러나서 하나의 추상의 형태이다. 어떤 느낌이 스치고 간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 이후에 그것은 하나의 자국처럼 흔적으로만 남을 뿐이다. 따라서 어떤 시대의 생생한 감성구조와 감성표현에 접근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이미’ 그 시대의 것일 수 없다. 사후적인 재구성으로 그것에 접근할 수 있을 뿐인데, 이러한 생각이 회의적이거나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 태도를 더욱 뚜렷하게 가질 때 시대결정론이나 본질주의적인 태도로 감성에 접근하는 방식을 벗어날 수 있다.

60년대 초입에 일어났던 4월혁명은 세계관의 변모, 세대의 단절, 정체성의 혼란 등 어떤 연속적인 흐름에 적지 않은 단절을 가져오면서 60년대 작가들의 문학적 감성의 문신을 색다르게 주조하였다. 그런 점에서 4.19혁명은 한국문학사의 흐름에서 새로운 미적 경험을 가져온 ‘시대문턱’으로 기억된다.

 

60년대는 사일구와 함께 시작되었다. 사일구가 성공한 혁명이건, 아직도 진행중인 혁명이건, 사일구는 60년대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60년대를 산 사람치고서, 외국에서 60년대를 보낸 사람이 아니고서는, 사일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일구는 문화사적으로 두 모습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사일구의 성공적 측면에서 연유하는, 가능성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하나일 수 있다는 긍정적 얼굴이었고, 또 하나는 사일구의 부정적 측면에서 연유하는, 이상은 반드시 현실의 보복을 받는다는 부정적 얼굴이었다. 사일구의 그 두 얼굴을 동시에 바라다본 사람들에게 사일구는 괴물처럼 보였지만, 그것의 한 면만을 바라다본 사람들에게 사일구는 각각 환희와 절망을 뜻하는 것이었다.

 

4.19는 가능성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교차하는 어쩌면 ‘괴물’의 형상처럼도 보였다. 그러나 현실과 가능성이라는 이중의 세계를 겪음으로써 다양한 문학적 고뇌가 만들어졌다. 예술가들의 감성에 닿는 ‘겪음’은 언제나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며,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경험까지를 함축한다. 한 시대를 ‘겪는’다는 것은 그 시대를 그저 살아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 시대의 이전과 이후의 사이영역을 고뇌하도록 요구한다. 혁명과 같은 역사적 사건이 감성의 영역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문턱으로서의 시대경험은 과거와 미래의 접점에 놓인 현재라는 시간지평 위에서, 현실과 이상, 전통과 근대, 이행과 변혁 등 겹의 문제의식들을 주요한 관심거리로 만든다. 그렇게 때문에 4·19혁명 이후의 작가들의 문학세계를 들여다볼 때에도, 그 시대를 구체적인 삶으로 겪었던 시선과 또 그것을 문학언어로 옮겨놓은 시선, 그리고 또 그것을 하나의 텍스트로 다시 읽는 우리들의 시선이 교차하는 사이의 ‘틈새’를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