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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 시대 횡단적 보편학으로서 감성인문학: 장소‧매체‧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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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권태의 근대성과 놀이

작성 : dang32g / 2010-03-29 01:00 (수정일: 2018-01-19 13:51)

(8차 세미나)

권태의 근대성과 놀이

-이상의 텍스트를 중심으로-

 

최창근(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HK연구원, 박사과정)

 

 

목 차

 

1. 머리말

2. 성천경험과 권태

3. 탈일상과 연애놀이

4. ‘자살-글쓰기’ 놀이

5. 맺음말

 

1. 머리말

 

이상의 소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제적 텍스트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다양한 주제와 사유들, 특유의 기법적 실험, 의미의 모호성과 불확실성 등은 이상의 텍스트들을 이중 삼중으로 직조하며 의미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그의 글은 시와 소설 수필 등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의미망을 형성하여 전체 맥락을 파악하기 위한 시도마저 어렵게 하고 있다. 이상의 소설이나 시에 대한 접근이 일면적이고 다소 파편화되는 이유도 아마 이와 같은 텍스트의 여러가지 특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상의 문학에서 핵심적인 요소들을 발견하고 이 요소들의 상호관계와 양상을 파악해본다면 우리는 이상의 의식과 그의 텍스트들을 아우르는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은 당대 최고의 모더니스트 중 한명이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근대와 전근대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어쩌면 모던의 중심에서 그저 멋스러운 모던보이로 살았다기보다는 모던의 최전선에서 온몸으로 부딪치며 모던을 문제시한 인물일 것이다. 이상을 근대의 상징으로만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를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에 영향을 받은 예민한 존재로 접근할 수도 있다. 나아가 근대는 이상의 사유와 창작에 어떤 가시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인간의 의식은 그 시대의 세계관 및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근대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은 근대인의 의식을 이루는 기본 구성요소이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가 공간보다는 시간의 측면에서 좀 더 실존적인 부분이 강하다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근대인에게 시간은 매우 특별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인간이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자신을 그 흐름의 어디에다 놓을 것인가에 따라 삶이 갖는 의미는 다양하게 변할 것이다.

근대인의 시간관은 전근대의 자연적 시간관과는 다르게 진보적ㆍ합리적 가치를 반영한 선적 시간관이다. 그러나 이 무한이 연장된 시간의 선상에서 인간이 느끼는 가장 빈번한 감정 중 하나는 바로 ‘권태’이다. 이상의 텍스트에서도 이 권태에 대한 서술이 수시로 나타나고 있다. 근대의 의식을 규정하는 가장 기초적인 요소가 시간이고 또한 근대적 시간에 대한 인간의 반응 중 하나가 권태라고 한다면 이 둘의 관계는 이상의 텍스트로 다가가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권태에 대처하는 방법을 통해 이상이 느끼는 모던에 대한 인식의 한 단면을 밝힐 수 있으리라 본다.

이상 문학에서 권태에 대한 연구는 그 성과가 한정적이다. 우선 해당 텍스트가 수필 「권태」에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권태의 의미를 현상학적으로 접근하거나 당시의 민족적 시대상황이나 근대적 자연관과 관련하여 해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류양선은 식민지의 현실과 분열증적인 근대적 삶의 측면에서 수필 「권태」를 분석하고 있으며 구연상의 경우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이용해 이상 개인의 내면적 상태를 이해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이경훈은 근대적 인식의 발전과 그로 인한 자연과 인간의 분리라는 근대성의 경험을 바탕으로 「권태」에 접근하고 있다.

이렇듯 이상의 「권태」연구는 단순히 수필 「권태」에 한정되거나 현상학적인 설명만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상에게 권태는 수필 「권태」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그의 전 텍스트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기존의 단편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이상이 느낀 ‘권태’라는 감정의 전반적 특성, 그리고 이 권태가 반영된 그의 텍스트들을 근대적 세계의 시간관과 연계하여 해석해 보고자 한다. 연구의 주된 텍스트는 권태를 주제로 한 성천방문 관련 수필 「권태」와 경성과 동경에서의 삶을 그린 소설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