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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17세기 전후 조광조에 대한 호명

작성 : baluni / 2010-11-15 20:08 (수정일: 2018-01-19 14:06)
 [26차 세미나]

17세기 전후 조광조에 대한 호명 : ‘虛’와 ‘實’의 욕망적 층위

박미향

(HK연구원, 사학과 박사과정)

                  

                     목 차

1. 여는 글

2. 조광조는 무엇을 꿈꾸었는가

3. 조광조의 문묘종사

4. 문묘종사 이후 조광조 호명의 욕망적 층위

5. 닫는 글

 

1. 여는 글

  조광조(趙光趙, 1482~1519)를 비롯한 조선시대 학자들의 학문적 배경이나 정치철학은 ‘유학’에 있었다. 그렇다면 그 유학의 실제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이는 맹자도 얘기했듯이 인의(仁義)의 구현에 있으며, 그 구현의 시작은 ‘여민동락(與民同樂)’1)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보았을 때, 백성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현실적 모순을 타파하려는 실천 의지가 유학자의 진정한 ‘實’이 아닐까한다. 이 實의 기저에 있는 감성에는 민에 대한 절절한 연민이나 안타까움이라는 감성적 층위가 있다고 본다. 반면 ‘虛’의 입장은 ‘實’과 상반되는 것으로서 민에 기반 한 ‘공공’의 것이 아닌 ‘사욕’의 형태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겠다. 즉 사욕은 사사롭게 자기 일신이나 가문 혹은 집단의 이익만을 도모하고 그 이외의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는 폭력적 기제를 갖고 있는 것으로서 부정적인 감성의 기제가 될 것이다.

  이 글은 조선중기 ‘실천적 도학자’로서 삶을 살다가 죽음을 당한 조광조의 삶을 조명함과 동시에 그의 죽음 이후 지속적으로 ‘호명’되는 모습을 쫓고자 한다.2) 그리고 그 호명의 배경에 내재된 각 집단이나 개인의 감성적 층위를 ‘허’와 ‘실’의 중층적 측면에서 주목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