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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웃음의 정치학과 소통 구조

작성 : dang32g / 2010-03-29 01:02 (수정일: 2018-01-19 13:52)

(8차 세미나)

웃음의 정치학과 소통 구조

-이항복의 문학작품과 우스개 이야기를 중심으로-

 

문성대(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HK연구원, 박사과정)

 

 

목 차

 

1. 들어가며

2. ‘부담천자(浮談天子)’ 이항복의 전유된 웃음

3. 골계의 이중적 구조와 웃음의 정치성

4. 마지막 선택 그리고 또 하나의 소통

5. 나오며

 

1. 들어가며

 

일찍이 비변사 회의가 파할 무렵에 공(이항복)이 늦게 당도하여 빗대어 말하였다. 여러 제관들이 “어찌 늦었습니까?”라고 묻자, “마침 여럿이 싸우고 있는 것을 보다가 지체하였소.” “누가 싸우기에 대감의 행차 길을 늦추었단 말입니까?” “환관이 중의 상투를 거머잡고, 중은 환관의 불알을 쥐어 당기며 큰 길 복판에서 싸우고 있었소.” 여러 제상들이 ‘중의 상투’, ‘환관의 불알’이란 말에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본고는 조선중기 붕당, 전쟁, 사화 등 정치・사회적 격변기를 살았던 유가적 문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28)을 대상으로, 그와 관련한 우스개 이야기와 문학작품의 조명을 통해 그의 골계(滑稽)적 기질과 웃음의 이면(裏面)을 살펴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이항복과 관련된 우스개 이야기는 그가 살았던 조선 중기 이후부터 오랜 시간동안 폭넓게 유전되어 왔다. 현대인들에게도 이러한 이야기들 중에는 낯설지 않은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지기지우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1561~1613)과의 재기 넘치는 이야기인 ‘오성과 한음’, 그의 장인 권율(權慄, 1537~1599)을 선조 앞에서 골탕을 먹이거나 담장 하나 사이로 휘어져 넘어온 감나무 가지에 얽힌 기지의 이야기,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정치적 사건에 대한 풍자 속에 다소 무거운 웃음이 깔린 일화 등이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그의 문집 ࡔ백사집ࡕ, 역사적 성격의 필기류와 야담, 패설 등의 문헌설화 뿐만 아니라 구비설화에서도 다양하게 변개되고 유전되어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항복의 이러한 면모는 동시대의 여러 문인들에 의해 재치가 있고 재담을 잘한다 하여 ‘농담의 왕(浮談天子)’으로 평가되기도 하였고 이후 후세인들에게도 ‘회해(詼諧)’나 ‘해학(諧謔)’을 잘한다거나, ‘궤변 잘허여난 충신’ 등으로 오랜 동안 기억되었다.

웃음과 관련된 이러한 기억들의 공통적인 속성은 ‘희극적 공상’이나 ‘허구적 과장’을 통해 현실을 비틀고 전도하여 그 속에서 통쾌한 웃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 ‘공상’의 역사적 진위나 결과로서 얻어지는 ‘웃음’의 효용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한 <오성과 한음>의 이야기에서도 다섯 살 터울의 오성과 한음이 실제로는 죽마고우가 아니라 약관의 나이를 넘기고 벼슬살이를 하면서 처음 대면하였다. 그들의 총명함과 재기 발랄함은 다양한 각편의 우스개 이야기가 집적되고 과장되면서 오랜 시간 동안에 ‘비범한 소년’의 이미지가 강조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항복과 관련한 다양한 문학작품과 남아있는 우스개 이야기에는 그의 ‘골계적 기질’이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웃음과 관련한 그의 문학론은 웃음이나 골계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던 중세 사회의 보편적인 시각에서는 특징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이항복은 조선 중기, 그것도 선조와 광해군이라는 당쟁과 전란으로 점철된 시대를 살았던 유가적 문인이다. 그는 각박한 당쟁과 위중한 전란 가운데서도 편당을 지양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 했다. ࡔ백사집ࡕ을 비롯한 여러 문헌자료에 남아있는 그의 문학작품을 읽어보면, 항상 해학과 풍류의 여유로움을 잃지 않음을 볼 수 있고 그의 인간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역사적인 평가에서도 ‘문장가’나 ‘문학가’로서 보다는 ‘청백리’나 ‘경세가’로서 주목을 받았던 상황에서, 웃음과 관련된 그의 독특힌 정신적 태도나 활용은 그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런 이항복의 인간적 면모를 웃음과 관련된 그의 골계적 기질로 재조명하고 혼란기를 살았던 유가적 문인의 감성이 어떻게 웃음을 통해서 소통되고 작동하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