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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유가철학의 감성체계(I)

작성 : dang32g / 2010-03-29 01:03 (수정일: 2018-01-19 13:52)

(8차 세미나)

유가철학의 감성체계(I)*

- ࡔ논어ࡕ의 인을 중심으로 -

 

정영수(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HK연구원, 박사과정)

 

 

목 차

 

I. 서론

II. 본론

1. 능동적인 감성의 운동인 인(仁)

2. 인(仁)의 형성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발현

3. 삶의 지향점이자 삶 속에서의 인의 추구인 호학

III. 결론

 

I. 서론

 

오늘날 철학자들은 서구의 합리주의적이고 유럽중심주의적인 철학으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문화의 가치들을 인정하는 다원주의를 중요한 철학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다원주의는 한편으로는 서양철학의 합리성, 즉 이성과 감성을 분리하고 이성 중심의 사유를 펼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중심주의적인 사유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문화의 가치들을 인정하고 이러한 다원주의에 맞는 ‘새로운 합리성’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곽점초묘 죽간의 유가계열 문헌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짐에 따라 선진유가철학이 성리학적인 리(理) 중심의 해석과는 달리 기(氣)를 중심으로 하는 인간의 정감에 근간한 철학적 사유를 펼치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와 함께 많은 연구자들은 유가철학이 인간의 정감을 중심으로 다시 재구성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철학적 요구는 한편으로는 유가철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는 점에서 동양문화가 가진 고유성과 장점을 드러내는 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감성에 근간하면서도 이성적 측면을 포괄하는 철학적 사유에 대한 연구라는 점에서 다원주의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합리성을 제시하는 길이다. 필자의 본 연구는 이러한 철학적 요구에 부응하여 유가철학의 감성체계를 밝히려는 시도이다. 이 글에서는 유가철학의 창시자이며 유가철학 전반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공자의 인에 대한 분석을 통해 유가철학의 감성체계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인을 ‘인간성(humanity)’, ‘박애(benevolence)’, ‘인격(person)의 근간’으로 이해해 왔지만 인은 이러한 용어들로 번역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은 ‘인간성’과 같이 이미 전제된 인간의 본질에 근간하지 않으며, ‘박애’와 같이 생물학적 전제조건에 의해 규정된 ‘영혼(psyche)’에 토대를 두지 않으며, 또한 인은 인격처럼 인간 최고의 상태를 형식적으로 규정해놓고서 인격형성의 길로 인도하지 않는다. 공자의 인은 인간의 도덕적 본질이기보다는 인간의 질적인 변화 가능성을 의미하고,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영혼의 능력이기보다는 교육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며, 형식적인 목표점을 설정하고 그 길로 인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삶의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공자철학에서 인은 예뿐만 아니라 악으로도 발현될 수 있기에 윤리적 것이며 동시에 미적인 내적심성이다. 또한 인은 삶 속에서 진정한 좋음[好]과 싫음[惡]으로 발현될 수 있는 심미적인 감성이며, 어떤 본질적인 것도 전제하지 않고 어떤 목표를 상정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과정이면서 동시에 운동인 심미적인 감성운동이다. 감성운동으로서의 인은 감성의 운동이라는 점에서는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예와 악을 통한 교육의 과정을 거쳐야만 획득되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경험에 의해 확장되고 형성되어가는 감성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감성작용으로서의 인은 본질적인 도덕의 가능태로서의 인이 발현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작용 자체가 인하게 확장되고 형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공자의 철학에 있어서 인은 심미적인 감성작용으로서 포괄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이며, 인간이 삶 속에서 변모해 가는 과정이며, 또한 타자와 세계에 대한 열림의 과정이다. 이 글에서는 인이 인간성, 심리원칙, 인격 등의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심미적인 감성운동임을 밝히고, 심미적인 감성운동으로서의 인이 내재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다른 덕목들과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 논할 것이다.

이 글은 공자의 인에 대해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전개하고 있다. 첫째, 왜 인을 능동적인 감성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밝힐 것이다. 말을 잘함과 얼굴빛을 좋게 하는 것에 대한 공자의 혐오와 인과 예와 악의 관계를 통해 인이 외재적인 도덕규칙이 아니라 인간의 내재적인 감성의 작용임을 밝히고 그것의 작용방식에 대해 규명하고자 한다. 둘째, 감성작용으로서의 인이 어떻게 발현되고 확장되어 가는지에 대해 가족 관계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밝히고자 한다. 즉 감성작용으로서의 인이 가족 관계에서는 어떠한 덕목으로 드러나는지, 그리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는 어떠한 덕목으로 발현되고 확장되어 가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셋째, 인은 감성의 작용으로서 외부세계를 포섭하면서 체화(體化)를 통해 능동적으로 확장해 간다. 이러한 인의 확장은 인간으로 하여금 가족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넘어 끝없는 배움에 대한 열정을 싹트게 한다. 공자는 이러한 끝없는 배움에 대한 열정을 ‘호학(好學)’이라 한다. 이러한 ‘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