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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한국 인상주의에 나타난 향토성에 관한 연구

작성 : dang32g / 2010-03-29 01:10 (수정일: 2018-01-19 13:54)

(9차 세미나)

한국 인상주의에 나타난 향토성에 관한 연구

- 1930년대 이인성 · 오지호를 중심으로 -

 

김허경(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HK연구원, 박사과정)

 

<목 차>

 

1. 들어가며

2. 한국 인상주의와 향토성

  2.1. 한국 인상주의 형성과 향토색론

  2.2. 향토성 담론과 분화

3. 이미지로서의 향토성

  3.1. 향토적 소재

  3.2. 색채적 특성

4. 나오며

 

1. 들어가며

 

1930년대, 일제 식민기간 중 가장 활발한 그룹 활동을 펼쳤던 서양화단에서는 진보적인 조형사상이 더불어 대두하는 양상을 보인다. 인상파의 토착화와 향토색을 통한 고유정서의 재발견이라는 자각과 함께 민족 고유의 미감을 확인하려는 움직임이 비로소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서양화는 서구의 회화 양식을 식민지 근대주의라는 제한된 여건 속에서 변형된 일본의 회화양식으로 받아들였기에 이는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굴절시키는 피할 수 없는 요인이 되어 왔다. 이러한 필연적인 시대상황 가운데 일본에서 이식된 서양화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시도되면서 향토성에 대한 논의가 촉발된다.

미술계에서 조선향토색에 대한 논의의 배경으로는 1931년 만주 사변이후 독립협회에 의해 ‘신일본주의’를 제창하면서 일본인의 개성 있는 미의 표현법을 확립해야한다는 일본적 양화계의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시대적 과제와 맞물려 ‘전통문화’ 또는 ‘조선적인 것’ 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미술계에서 조선 향토색에 대한 논의의 배경이 되는 단초가 되었던 것이다. 이후 다양한 사상과 미학이 전개 되면서 1930년대에 이르러 한국 화단은 김복진과 안석주를 중심으로 한 조선 ‘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Korea Artist Proletaria Federation, 1925)을 결성하게 된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1935년 공식해체에 이르는 과정을 거치면서 조선 향토색은 더욱 급격한 유행을 이룬다. 사회주의적 색채에 관한 논의는 급격히 사라지고, 정치성을 배제하고 순수조형만을 탐구하는 태도가 예술계 곳곳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민족성이라는 용어보다는 주로 향토성이라는 용어로 드러나는 가운데 식민지 기간 내내 줄기찬 화제가 되었다.

특히 1929년에서 1934년 사이에 동아일보가 벌렸던 ‘브나로드 운동’과 조선일보의 ‘한글보급운동’은 전국 국민의 80%가 농민이었던 까닭에 거국적인 농촌 계몽 운동 또는 문맹퇴치운동으로 전개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민족의 자립의식을 고취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기에 일제에 의해 결국 중단되는 상황을 맞는다. 이러한 사회 정황은 문학에서 귀향소설 또는 농민문학이라고 일컫는 문학형식을 띈 이광수의 <흙>, 이기영의 <고향>, 심훈의 <상록수>가 나오면서 미술가들의 그림에서도 향토적인 소재들, 나아가 한국의 풍속적 단면이나 내용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확대되는 요인이 된다. 이처럼 향토적 정서의 부각과 우리문화전반에 걸친 귀향의식의 확대로 문학에 이어 미술에서도 향토색이나 향토적 소재주의의 팽창을 가져온다. 일제의 식민지역에 대한 문화정책으로서의 향토색에 대한 강조, 또는 미술가들이 스스로 선택한 자주적인 자기정체성의 확인이라는 향토색의 논지는 이와 같이 1930년대 미술계의 화두로 등장한다.

본고는 일본에서 도입된 서양화가 전개되면서 대체로 자연풍경을 소재로 한 핵심적인 인상주의 화풍을 형성하였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미학과 의식으로 표명된 인상주의는 어떠한 특성이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1930년대 향토색에 대한 논의가 서구 문화의 유입에 따른 민족주의 의식과 결부되어 우리의 감성에 걸맞은 양식을 찾기 위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한국 인상주의에 나타난 향토성의 추구는 민족의 본질적인 가치가 훼손되는 암울한 식민지 시대에 대응하는 저항의 자세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인상주의에서 우리 고유의 정신이나 정서가 내재된 향토성이란 무엇인가? 향토성은 보수적이라는 의미의 고유성을 내포하는 한편 서구적 · 외래적인 것에 대해서는 방어적인 의미를 갖는데 이는 “우리가 태어나서 자란 고장에 연계관계를 가지는 감정”인 향토정조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지방색을 띠게 되고 시각을 확대하면 민족성이 된다.특히 ‘예술에 반영된 지방색’을 의미하는 ‘향토색’은 1930년대 말까지 우리의 미술계를 주도했던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식민지 시대의 인상주의의 유입과 전개를 토대로 조선의 향토적 정서를 탐구한 미술단체인 <녹향회>, <동미회>, <향토회>를 통해 향토성에 관한 담론형성과 분화되는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1930년 서양화단의 기저를 이루며 이들 단체에서 활동했던 이인성과 오지호의 작품을 중심으로 이미지로서의 향토성을 향토적 소재와 색채적 특성으로 나누어 분석하고자 한다. 양식의 분류보다는 작품의 특징에 따른 해석에 주목하여 향토성이 인상주의와 조선 향토색를 토대로 어떻게 발현되고,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를 중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