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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보들레르의 현대성과 이미지

작성 : dang32g / 2010-03-29 01:16 (수정일: 2018-01-19 13:56)

(10차 세미나)

보들레르의 현대성과 이미지

-『현대적 삶의 화가(Le peintre de la vie moderne)』를 중심으로 -

 

이승미(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HK연구원, 석사과정)

 

 

목 차

 

Ⅰ. 들어가며 - 도시의 판타스마

Ⅱ. 디테일 - 모호성과 휘발성(fugitif)

Ⅲ. 기억 - 되찾은 기억

Ⅳ. 이미지 - 도시의 야만성

Ⅴ. 남은 과제들

 

Ⅰ. 들어가며 - 도시의 판타스마

 

서구 사상사에서 상상력과 이에 따른 결과로 발현되는 이미지에 대한 인식은 긴 여정을 지나왔다. 플라톤 이후 거의 모든 철학자들이 상상력과 이미지에 대해 언급하였고,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평가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는 17세기 합리주의를 정점으로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저해하는 주변적 가치로 평가절하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현실 속 어느 곳에나 편재해 있어 통일된 의미를 부여하여 그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 역시 우리가 상상력과 이미지로의 접근을 주저하게 되는 이유이다. 이렇듯 감각적인 것과 지적인 것 사이를 큰 폭으로 움직이는 이미지라는 용어를 정의 내리기는 정말로 쉽지 않다. 그러나 진폭이 크다는 것은 이미지 자체가 극단적인 영역들을 인정하면서 그것들을 때로는 혼합시키고 때로는 대립시키면서 나름대로 폭넓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요컨대 이미지는 하나의 학문적, 의미론적, 해석적, 인식론적 고정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연결해주는 구체적인 직물로 존재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특성들은 상상력의 이미지가 우리가 문자 그대로 두 음절, 감성이라 소리내며, 의미상 유동적인 영역에 속해있는 그 감(感)과 일정 범위 내에서 동일한 기원과 성격을 갖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즉, 다양한 이미지는 다양한 감각에서 기인하고, 결과적으로 확산된 감성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지각에도 관여하고 관념적 기능으로도 확대되는 것이 이미지인 것이다.

이글에서 주로 다루게 될 보들레르는 프랑스 문학사조에서 후기 낭만주의와 상징주의 경계의 인물이며, 역사적으로는 “프랑스 사회가 19세기의 마지막 반세기만큼 그렇게 급격하게 변화하였던 적은 결코 어떤 시기에도 없었다”고 평가되는 그 시기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보들레르는 기존의 운율 중심의 시를 이미지 중심의 시로 바꾸어 놓았다. 또한 권태나 불안 같은 인간의 정서를 이미지화시켜내는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가 놓인 경계적 영역 혹은 변화 수용의 지점에서 그가 모색하는 새로운 리듬과 이미지에 주목해본다.

우리에게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의 시인으로 유명한 보들레르는 초기의 <미술 살롱평>과 그의 후기작에 속하는 1863년에 발표된 『현대적 삶의 화가(Le peintre de la vie moderne)』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시학을 확대하여 미학적 방법론을 모색한 예술비평가이기도 하다. 특히 『현대적 삶의 화가』는 보들레르적 낭만주의라 할 수 있는 ‘현대성’의 개념을 다양한 이미지들의 층위를 살펴 고찰한 작품으로, 그가 포착하려했던 현대적 미감(美感)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구의 폭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총 13개의 부제가 붙은 이 작은 미술 평론에서, 보들레르는 그가 현대적이라 평했던 콩스탕탱 기 Constantin Guys의 작품들과 그에 따르는 자신의 비평을 통해 동시대의 풍경을 드러내고 있다. 보들레르는 기(Guys)의 회화적 진술(형상성)을 모티브로 도시에 관한 그의 내적 시선들을 언어화한다. 이를 통해 시각적 이미지의 원초성에 의존하여 간접적일 수밖에 없는 언어적 이미지의 한계를 극복하고, 우리와 대상 간의 거리를 최소화하려는 화자의 유연한 감각을 엿볼 수 있다.

화가와 시인의 시선의 교차로에는 그들의 피사체, 도시 ‘파리’가 있다. 시인에게 이 도시는 특별한 미적 대상이다. 자신의 표현대로 완벽한 산책자, 정열적인 관찰자였던 보들레르에게 제2제정기의 파리는 일상의 세속인 동시에 시(詩)가 드러나는 몽상의 영역이다. 현대성에 관한 지속적인 담론을 펼쳐온 마샬 버만은 “보들레르는 그 어떤 작가도 그렇게 훌륭하게 보여줄 수 없는 것, 즉 도시의 현대화가 그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시민들의 영혼의 현대화를 어떻게 자극하고 강화시킬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고 지적한다.

도시라는 특수한 대상은 그의 시대와 현재가 공유할 수 있는 공통분모이며, 우리가 과거의 이미지를 완결하지 않고 현재적 상상력을 공유하기에 가장 용이한 시간의 축이며 공간의 지점이다. 도시를 이야기했던 작가들 중에서도 보들레르가 읽어낸 당시의 도시의 다양한 이미지들은 현재의 그것과 가장 근접한 심상(心象)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도시에관한 감성만으로도 그의 도시를 읽어내는 것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시공간의 변화 속에 놓여지는 도시의 속도감은 이미지를 테두리화 할 인내심있는 시선을 상상력에게 부여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것은 우연적이고 휘발성을 띤다. 도시의 속도는 이미저리들을 확산하는 동시에 수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야민의 19세기 도시감(感)에 기대(어)보자면, ‘모든 사물에서 모호성이 확실성을 대체한다.’

도시 속에서 그림의 인상, 혹은 시의 서정을 경험하려하는 이 글은 회화적이기에 ‘구상’에 가까운 도시풍경이고, 시(詩)적이기에 ‘추상’에 근접한 도시 읽기이다. 모호한 가능성을 열어두며, 이 글에서는 재현적 요소가 강한 도시의 디테일들의 특성을 관찰하는 것을 시작으로, 시적 확장과 상상력의 산물인 현대적 이미지들이 감지되는 방식을 살펴본다. 좁게는 보들레르의 이미지들, 논의의 확장이 가능하다면 이 글은 19세기 유럽의 감성에 용해되어있는 상상력과 이미지의 관계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