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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읍성에 나타난 권위에 관한 연구

작성 : dang32g / 2010-03-29 01:17 (수정일: 2018-01-19 13:56)

(10차 세미나)

읍성에 나타난 권위에 관한 연구

- 나주읍성을 중심으로 -

 

이경태(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HK연구원, 석사과정)

 

 

목 차

 

1. 머리말

  1) 권위와 공간

  2) 연구의 방법

2. 나주읍성에 관하여

3. 읍성공간 권위의 표현

  1) 경관적 이미지로 나타난 권위

  2) 도로체계에 나타난 권위

  3) 좌향에 나타난 권위

  4) 관아공간 배치구성에 나타난 권위

4. 맺음말

 

1. 머리말

 

1) 권위와 공간

공간에서 권위에 대하여 논하고자 할 때, 그 기원을 농업생산으로 인한 정착생활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농업으로 발생한 잉여생산물에 대한 집단 사이의 갈등이 결국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관계를 만들고, 이러한 투쟁 속에서 집단을 통치하는 정치권력이 탄생한다. 지배라는 것은 정치권력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지속시킬 수 있는데, 지배자의 주변에는 이 정치권력을 노리는 자들이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지배자의 공간은 정치권력을 노리는 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곳곳에 설치할 필요가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장치는 높이를 이용하여 적들을 차단하는 성곽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방어수단만으로는 적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주지 못했다.

정치권력에 대한 내외적 도전과 일상적인 불안을 극복하는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는 피지배층에게 지배-피지배 구조를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다. 지배자가 정치권력의 영원한 번영을 기하려고 하면 피지배층이 지배-피지배의 구조를 숙명적으로 인식할 있도록 하는 권위적 지배이데올로기를 창출해야 한다. 그 권위적 지배이데올로기의 표현은 읍성에서 경관적 이미지를 통하여 나타났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형성된 조선왕조는 그 중심에 도성과 궁성을 짓고 정치권력을 행사하였다. 조선의 수도인 한양은 고대 중국의 유교적 군주관에 적합한 국도(國圖)의 구성원리를 중시하였으며, 이에 따라 권위공간을 조직하였다. 이전의 국가들과는 달리 조선은 지방관을 직접 지방읍치에 파견하여 지배토록 하는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수도에 표현된 경관적 이미지를 지방읍치에 재구성하는 방법으로 그 권위를 나타내야 했다. 당시의 지방읍치는 무엇보다도 정치중심지였으며, 정치적 권위를 시각적으로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권위와 공간에 대하여 논하기에 앞서, 조선왕조의 정치적 권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표현되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조선의 정치사상은 당시 체계 이념이었던 성리학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성리학의 본질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 사색을 집중하는 것이며, 우주질서의 조화를 운영하는 출발점으로 인간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을 주도하는 것은 정신이라고 한다면, 육체는 정신의 지도에 순응하는 관계에 있다. 이러한 유추에 따라 가족 내에서도 부자․부부․형제간에 질서유지를 위한 가족적 권위와 규범들이 형성되며, 국가 내에서도 군신간에 정치적 권위와 규범들이 형성된다.

군주의 권위는 성리학이 인간관계의 조화로운 모델으로 제시하는 가족적 권위관계로부터 형성된다. 가족 내에서 부권은 가족구성원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존경을 받고 권위를 행사한다. 가족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군주와 백성 사이에 형성되는 정치적 권위도 단위만 다를 뿐 가족에서의 부권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군주권을 확정하는 주체는 하늘과 백성이다. 하늘은 자연적 질서의 원리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1인에게 왕위를 명하고, 백성은 최고자에게 정당성과 권위를 보장해준다. 따라서 백성으로부터 자발적 복종을 받기 위해서 정치권력의 정당성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2) 연구의 방법

본 연구에서는 읍성공간을 연구함에 있어서 조선시대의 유교적 권위가 어떻게 공간의 배치구성에 영향을 미쳤고, 어떠한 형태로 표현되었는지 논의해보고자 한다. 이와 같은 원리들을 사례조사로서 나주읍성을 비롯한 조선시대 주요 읍성공간에 적용시켜보고자 한다.

연구의 방법은 조선시대 도성의 입지선정과 배치에 있어서 기본원리라 할 수 있는 주례고공기와 풍수지리설의 개념을 분석하고, 이러한 개념이 읍성공간의 권위 형성에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파악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원리 외에도 우리만의 특수성이 읍성공간에 나타나지 않았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읍성 내 경관적 이미지를 통한 권위 표현과 공간구성의 기본 요소인인 도로체계․좌향․축과 대칭을 통한 권위의 표현, 그리고 조선의 정치 사회적 제도 속에서 공간의 권위가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읍성 공간 내에서 살펴보고, 이러한 공간 구성이 나타나게 원인을 규명하는 방향으로 논문을 진행하고자 한다.

본 연구를 위하여 기본적으로 조선후기 전국적인 지도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발행된 『조선후기 지방지도(1872년)』를 통하여 읍성의 구조를 분석하였으며, 필요에 따라 궁궐도나 현재의 읍성도면을 활용하였다. 보조 자료로서 일제시대에 찍은 약간의 읍성관련사진을 참고하였다.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조선후기, 즉 『조선후기 지방지도(1872년)』가 만들어진 고종년간인 19세기 후반으로 하였는데, 이 시기는 왕권강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경복궁의 중건과 함께 지방읍치시설의 대대적인 정비가 있었으며, 또한 일제에 의해 지방읍성공간이 해체되기 이전 마지막 읍성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의 공간적 범위는 지방읍성공간, 그 중에서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도심지 내에 광범위하게 분포된 읍성공간이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나주읍성을 연구의 중심으로 정하였다. 물론 나주읍성 하나만 가지고 읍성공간의 권위에 대하여 논할 수는 없기에 고지도에 나타난 몇몇 읍성을 사례로 활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