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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중세 일본설화에 나타난 공포와 괴이 양상

작성 : dang32g / 2010-03-29 01:18 (수정일: 2018-01-19 13:56)

(10차 세미나)

중세 일본설화에 나타난 공포와 괴이 양상

- 百鬼夜行의 사례를 중심으로 -

 

최가진(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HK연구원, 석사과정)

 

 

목 차

 

1. 일본의 공포 감성과 百鬼夜行

2. 百鬼夜行의 출현 배경

3. 중세 일본설화에 나타난 공포와 괴이 양상

  3.1『今昔物語集』의 百鬼夜行

  3.2『宇治拾遺物語』의 百鬼夜行

4. 중세 百鬼夜行의 특징

 

1. 일본의 공포 감성과 百鬼夜行

 

어떤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정서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서 함께 생활하며 주고받는 수많은 감정들과, 이로 인해 발생되는 사건이나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문화현상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서는 글이나 노래 또는 그림이라는 구체적 형태를 띠면서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고, 결국 집단 외부의 사람들로부터도 집단 내부와 공통적인 혹은 비공통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과정들을 거쳐 야기되는 다양한 감성 중, 무엇보다도 자극적이고 전염성이 강하며 오래전부터 공통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마도 ‘공포’가 아닐까 한다. 예로부터 인간은 죽음이라는 근원적 공포를 시작으로 천재지변ㆍ질병과 같은 자연적 요인이나 신(神)ㆍ정령(精靈)과 같은 초자연적 요인, 또 가난ㆍ범죄ㆍ상해ㆍ전쟁 등의 사회적 요인에 의해 초래되는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여기에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문자가 없던 시대에는 구술로 후에는 글이나 그림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영상으로까지 공포는 그 이미지를 증식시켜 왔다.

현재 공포의 이미지화가 다른 어떤 곳보다도 왕성하게 진행되고 있는 곳은 일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링: リング》ㆍ《주온: 呪怨》시리즈와 같은 공포영화의 흥행,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나 교고쿠 나쓰히코(京極夏彦)와 같은 추리소설 작가들의 인기, 미즈키 시게루(水木しげる)와 이마 이치코(今市子)의 요괴만화, 해마다 출판되는 괴담(怪談)ㆍ기담집(奇談集) 등 일본의 전반적인 문화 속에서 공포는 하나의 문화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이러한 작품들은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인기를 끌어, 일본적 공포가 인간의 보편적 공포 감성을 흔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시사해 주었다.

이 모든 문화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의 근저에는 약 1200년 전부터 축적되어 온 문헌자료가 존재한다. 일본의 공포와 이에 수반되는 괴이(怪異) 현상(이하 괴이)의 역사는 귀족문화가 꽃을 피웠던 헤이안(平安:794~1185) 시대 초중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세 모노가타리(伊勢物語』에서는 오니(鬼)가 ‘여자(二条の后)’를 한입에 먹어치워 버리고,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서는 ‘겐지’의 정실부인 ‘아오이노우에(葵の上)’와 애인 ‘유가오(夕顔)’가 원령(物の怪)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러한 공포ㆍ괴이의 이미지가 한층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된 것은 정세가 혼란했던 헤이안 말기와 가마쿠라(鎌倉:1185~1333) 시대 초기로, 이시기에 편찬된 대표적 설화집 『곤자쿠 모노가타리슈(今昔物語集)』와 『우지슈이 모노가타리(宇治拾遺物語)』에는 귀신이나 원령과의 조우 외에도 뱀과 여우가 일으킨 기묘한 사건, ‘백귀야행(百鬼夜行)’이라 불리는 한밤의 요괴(妖怪)무리의 출현, 인간이 요괴로 변해버린 일화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공포ㆍ괴이의 스펙트럼 속에서도 일본인의 공포를 자극한 것은 백귀야행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중세설화 속에 백귀야행에 관한 일화가 기록된 이후, 이러한 이미지는 다량의 에마키(絵巻)로 제작되어 마침내 <백귀야행 에마키>라는 하나의 장르를 탄생시켰고, 에도(江戸:1603~1867) 시대에는 서민들 사이의 인기 소재거리로서 우키요에(浮世絵:전통 목판화)나 괴담집ㆍ요괴 화집(畵集) 등에 빈번히 등장했다는 점이 이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자료들이 단순한 과거의 전승물이 아닌, 현대 학자들의 연구 과제임과 동시에 새로운 대중문화 창조의 원천소스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백귀야행이라는 괴이가 일본적 공포를 파악하기 위한 중요 키워드라는 유추를 가능케 한다.

따라서 앞으로 본고에서는 중세 일본설화에 나타난 백귀야행의 사례와 그 양상을 살펴보고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공포에 관해 고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