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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질병과 소문 : 소록도의 기억

작성 : baluni / 2010-07-20 20:06 (수정일: 2018-01-19 13:59)
 

제17차 세미나, 2010-4-2(금)

질병과 소문 : 소록도의 기억

한순미(인문한국연구교수)

            <목 차>

1. 소문과 고백 : 근대의 틈

2. 나환 이미지와 수용소 : 위생과 추방

3. 규율체제와 병리학적 술어의 공모 : 나환이 주어가 된 적이 있었을까

4. 나환 이야기, 왜 쓰지 못하는가

5. 점액질의 근대 읽기 : 어떤 ‘망명’

1. 소문과 고백 : 근대의 틈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에 대한 나쁜 소문이다.

-아도르노, 『미니마 모랄리아-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

‘문둥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나병(癩病, 한센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서, 관용구나 속담에서 그 오랜 부정적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1) 나환(자)에 관한 속신과 소문들은 알 수 없는 경로를 타고 오래 전부터 우리 곁을 떠다녔다. 1920년대 경남에서는 나환을 완치할 수 있다는 여러 가지 “미신요법”이 떠돌았다.2) 한 나환자의 투병기에서 흘러나오는 낮은 목소리는 당시 나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정도를 드러내준다. 다음은 1930년대 중반께의 일이다.

▲ 내가 小鹿島라는 고유명사를 알게 된 건 10대의 소년시절이었다. 뒷동산 바위서리에 핀 진달래를 꺾어 들고 놀던 어느 봄날, 초등학교에 다니는 같은 반 동무와 함께 이웃집엘 갔었다. 그때 아주 얼굴이 험상궂은 5,6명의 나환자들이 떼를 지어 장타령을 구성맞게 한바탕 부르고 나서 주인아저씨에게 구걸의 손을 벌리는 것을 보았다. 주인아저씨는……順아-너 울면 저 사람들이 소록도로 잡아간다…… 어서 그쳐, 울고 있는 어린 딸에게 이렇게 위협을 주는 아버지의 말이 미처 떨어지기도 전에 順의 울음은 그치고 한 바가지의 보리쌀을 받아 긴 자루에 넣고 그들은 어디론지 사라졌다.

이러한 광경을 본 어린 동심(童心)에는 남루한 옷차림과 험상궂은 얼굴 모습이 연상되어 小鹿島라는 지명은 항상 무서운 공포의 대상으로 키워졌다.(투병기 <나와 小鹿島>)3)

떼를 지어 다니며 장타령을 부르던 문둥이들은 여기저기로 구걸을 다니면서 비참하게 살았다. “너 울면 저 사람들이 소록도로 잡아간다”라는 이웃 아저씨의 말에 울음을 뚝 그친 아이, 그 다음부터는 남루한 옷차림과 험상궂은 얼굴 모습이 연상되어 ‘소록도’라는 지명은 무서운 공포를 주었다.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있었던 바로 그 말은 당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나환자를 인식하고 표상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떠도는 말이 한 아이에게 문둥이와 소록도를 무서운 공포를 주는 그런 이미지로 만들어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