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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저항과 감성 : 광주항쟁 시기 지역민의 저항과

작성 : baluni / 2010-07-20 20:13 (수정일: 2018-01-19 14:01)

 (19차세미나)

 

[“감성연구” 세미나/2010. 4. 16]

저항과 감성 : 광주항쟁 시기 지역민의 저항과 대중감성

유경남(공간지리)*

 1. 머리말

 2. 항쟁의 발발과 죽음의 공포(恐怖)

 3. 항쟁의 확산과 대중의 집결(集結)

 4. 항쟁에서의 죽음과 대중의 침묵(沈黙)

 5. 맺음말

1. 머리말

본 논문에서는 광주항쟁을 ‘역사적 사건(historical events)’로 이해하고자 한다.1) 특히 1980년 5월 18일 계엄군과 학생시민의 충돌에서부터 시작된 항쟁이 확산되는 사회․문화적 시·공간으로서 ‘광주항쟁’에 주목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1980년 5월 광주항쟁은 정권을 독차지하고자 하는 신군부 세력에 의한 ‘비상계엄령’의 확대 조치를 통해 시작되었고,2) 이러한 전국 계엄령이 광주 지역민의 일상적 생활에 제제를 가하면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신군부 세력은 광주항쟁을 ‘소수 폭도에 의한 폭동으로써 광주사태’라 규정하였고, 지역민 또한 광주항쟁을 ‘국가 및 군부에 의한 무자비한 폭력사태’와 이에 대한 ‘정의로운 저항’으로 인식했다. 결국, 광주항쟁은 당대인들의 담론투쟁, 이를 통한 정치적 주체(agency)형성의 토대와 과정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시·공간[場]이었다.3)

이에 반해 기존의 논의에서 광주항쟁4)은 남한 역사의 한 기점, 전환점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광주항쟁이 이후 1987년 6월 항쟁과 한국의 민주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도세력과 참여주체의 계급·계층을 확인하는 작업, 항쟁의 원인과 배경, 그리고 그것들의 결과물로서 항쟁이 가지는 ‘한국사[國史]에서의 의미’ 등을 규명하고자 노력해 왔다.5) 항쟁 이후의 이러한 ‘실천’적 연구들은 남한 사회의 정치 공학적 구도를 배경으로 ‘항쟁의 진실·진상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6) 1980년 광주항쟁 당시의 현장성, 즉 우발적적인 사건들의 연쇄반응 속에서 대중의 다양한 ‘움직임’(지역민의 참여의식과 동기)은 간과한 측면이 있었다.7)

이러한 논의를 배경으로 본고는 광주항쟁 시기의 ‘대중’에 천착하고자 한다. 기존의 ‘대중’은 또한 유럽의 산업화에 따른 창조물로서,8) 학문적 ‘관찰의 대상’이었다.9)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시즘(fascism)’에 대한 관심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대중은 조작·왜곡될 수 있고 ‘동원되는 대상(對象)’으로서 근대 이성이 극복해야 할 ‘부정적 인간’이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동원 체제에 대중들이 일체화 혹은 동일화되었다는 외면적 집단성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대중’이 어떠한 심리적 혹은 감성적 매커니즘에 의해 구성되며, 어떠한 조건이나 사회적 분위기 또는 어떠한 방식의 감성의 관여에 의해 동력을 갖는가,10) 다시 말해 어떠한 ‘가능한 조건’ 속에서 대중의 움직임이 발현되었는지 주목해야 할 것이다.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