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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뎃골] 2막 3차(2021.01.19.) : 슬픔과 카타르시스

작성 : 관리자 / 2021-02-19 21:47

[20210119] 2-3 간뎃골인문마을 후기

제2막 3회 슬픔과 카타르시스
- 영화 <러덜리스> (Rudderless, 2014)

안녕하세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간뎃골인문마을이 돌아왔습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모임을 가지게 되었네요. 또한 코로나가 저희가 모이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 화상모임 프로그램 <Zoom>을 활용해 현장과 가상을 오가는 모임을 보냈네요.

윌리엄 H. 메이시의 <러덜리스>라는 영화를 주제로 모임을 가졌습니다. 영화는 총기난사로 자식(조쉬)을 잃은 샘의 밴드결성기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샘은 총기사건 2년 후 에밀리(전부인)로부터 조쉬의 짐을 받게 됩니다. 샘은 그 짐을 다 버리려고 하나 조쉬의 사진과 자작곡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다 아들이 만든 자작곡으로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그 노래에 감명받아 쿠엔틴이라는 젊은 뮤지션 지망생이 샘에게 다가옵니다. 샘은 쿠엔틴과 밴드를 만들게 되고 노래를 하며 새로운 유대를 찾습니다.

영화에서 제가 인상 깊었던 장면은 샘과 에밀리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입니다.

총기사건 2년 후 샘은 술독에 빠지며 집도 없이 페인트칠 일용직으로 돈을 벌며 요트에서 삽니다. 그리고 에밀리는 샘과 아들과 함께 살던 집을 팔고, 인공수정으로 홀로 새로운 아이를 낳았습니다. 러덜리스(Rudderless)라는 말은 조향키를 놓쳐 배가 휘청거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 휘청거림에서 버티는 방법이 두 사람이 각기 다른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배를 떠나 바다로 뛰어들던지, 누군가는 새로운 배를 찾습니다.

샘은 과거를 피하고 에밀리는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려고 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에밀리가 좀 더 건강한 방법으로 상실의 아픔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온전한 치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실상 제가 자식을 잃은 분에게 할 수 있는 건 침묵밖에 없습니다. 상처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제안하거나 그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 자체도 사실 잔인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예전에 저의 아버지의 동료였던 광주에 사시던 탈북자 삼촌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 분은 대보름달 전날에 딸을 잃었다고 하셨습니다.

삼촌은 자식의 죽음에 대해 제게 딱 한 마디만 해주셨습니다
"아무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영화 <러덜리스>를 보면서 과거를 마주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21년 1월 26일이 간뎃골인문마을 마지막 모임입니다! 어려웠던 시간을 보내면서도 마무리하는 피날레가 다가왔군요. 모쪼록 많은 분들이 화상으로나마 참여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