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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야온] 2막 2차(2021.02.10) : 나의 싸움

작성 : 관리자 / 2021-02-19 21:56

[20210210] 2-2

제2막 <나를 더 깊고 넓게 알아가기>
제2장 나의 싸움

안녕하세요?

2월에 들어서고 햇볕이 자작하게 오는 이번 주는 어떠신지요? 마스크를 끼고 걷는 풍경이 낯설지 않는 거리를 지나 신안동에서 두번째 모임이 찾아왔습니다

제2장에서는 은유 작가님의 산문집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으로 이야기를 꺼내고 나누어 봤습니다. 저는 수업을 듣고 이번에 맞이한 산문집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산문집에서 성의 본분(혹은 직분)이 구조화된 몸과 의식에 관한 이야기가 던져지고 나서 참여자분들의 쉬이 여기지 못할 말씀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참여자 분들은 엮는이 선생님과 저를 제외하고선 모두 여성이였고 어머니셨습니다.

그 분들의 삶에서 (누군가에) 자기가 "있다" 혹은 "존재한다"가 인정받기 힘든 삶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엮는 선생님께서 언급하셨던 김춘수의 "꽃"의 시에서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어떤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납니다. 진짜 이름을 불러주기 까지라. 존재에 진명을 알수있을까요? 그 대상이 불러지는 이름이 결국 이름대로에 조건과 속성이 따르는데, 이름이 아니라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예로 저희 어머니에게 어머니로서 부르는 이름 "엄니", "엄마", "어머니". 그저 제 어머니는 어머니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분은 분명 이름 세글자를 가지신 분인데, 그 세글자 마저도 저의 어머니의 이름으로 곧장 여겨집니다.
그 존재가 가진 이름에 따른 저와의 관계에 따른 역할로만 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참 그 존재라고 하니 몰상식하고 불손해 보이지만, 한번 낯설게 그 존재, 사람으로 보고자 낯설게 칭해봤습니다.
그 존재는 술을 좋아하시고, 청국장을 좋아하십니다. 제가 매우 사랑하는 존재중 하나죠. 하지만 가끔 미운 마음이 가기도해요. 대개 어머니로서 관계 맺을 때 매몰되는 마음의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럴 때 어머니를 어머니가 아닌 것처럼 낯설게 보려는 시도를 가끔 합니다. ~씨, ~선생님, ~여사님라고 장난스레 던져봅니다. 뭐랄까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역할로서 관계를 맺어보는 시도입니다. 이 시도에서 어머니는 이러니까 이러지, 이런 사람이야 여기는 세월에 경화된 시점을 약간 틀어서 보게 하는 듯 해요.

수업에 이야기와 언급된 글들을 감응하다보니 두서없이 제 생각에 널어졌습니다만, 이러한 생각에 대해서 차후에 정리해서 좀 더 인문마을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네요.

더욱 다음 수업이 기대가 됩니다. 다음에는 어떤 마음을 알게될까요
그럼 다음 모임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