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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부의 역사 기억과 망각을 위한 제의

작성 : abraxas701 / 2010-09-19 12:27 (수정일: 2018-01-19 10:27)

주변부의 역사 기억과 망각을 위한 제의

-임철우의 소설에서 역사적 트라우마를 ‘말하는 방식’과 서사적 징후

 

한순미(전남대)

 

 

1. “아, 입이 없는 것들” : 주변부의 목소리

2. 지속되는 폭력의 징후 : 회귀하는 유령, 말하는 몸

3. ‘이야기’, 망각의 드러남 : 빨갱이와 문둥이라는 “낙인”, 그리고 ‘나’

4. 구원의 글쓰기 : 끝나지 않을 제의

5. 임철우의 소설이 전하는 말 : 기억하면서 망각한다는 것

   

1. “아, 입이 없는 것들” : 주변부의 목소리

 

살아가는 징역의 슬픔으로

가득한 것들

-이성복의 시 <아, 입이 없는 것들> 중에서

 

지우면 지울수록 아픈 기억은 더욱 선명해진다. 그런데도 계속 지우려는 노력은 그 아픔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한편 거기에는 그것을 잊지 않겠다는 요청이 모순적으로 자리해 있다. 이처럼 망각은 기억 행위의 과정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망각된 곳에는 기억의 주름들이 여러 겹으로 접혀 있다. 임철우의 소설은 이렇게 바꾸어 묻는다. 우리 곁에 살았던 그들은 왜 갑자기 사라지게 되었는가. 우리는 왜 그들의 얼굴을 아직 잊지 못한 채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그들의 얼굴을 잊지 않아야 하는가. 임철우의 소설은 이러한 물음을 안고, 해방 전후에서 5.18에 이르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서사화해 왔다.

그의 글쓰기는 달리 말해 시대적 망각에 대한 저항의 글쓰기였다. 어떤 기억들은 “사람들의 쓰디쓴 기억의 잔에다가 조금씩 조금씩 맹물을 타넣어주었으므로”(「곡두 운동회」, 60쪽) 하나 둘씩 지워졌고, 어떤 기억들은 “한사코 저마다의 뇌리에서 그들의 기억을 송두리째 지워 없애려 지금껏 애써”(『붉은 산, 흰 새』, 66쪽)왔기에 겨우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보다 확실하고 두려운 재앙의 정체에 대해서 미처 깨닫지 못”(「불임기」, 176-177쪽)한 것일 뿐, 아무리 지우려 해도 상처의 흔적은 저주의 낙인처럼 우리의 몸에 남아 있다. 그의 소설들은 “죽음보다 더 깊은 망각의 늪 속에 빠져” 있는 우리를 다시 저주스런 기억 속으로 이끈다.

해방,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미체험 세대’로서 역사적 기억을 쓴다는 것은 상상력으로 추체험된 ‘이야기’에 불과할 수 있다. 이 점을 들어, 임철우의 소설이 역사적 경험을 구체적으로 재현하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철우의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울림은 역사적 사건을 직접 체험한 세대의 작가들과 다른 방식으로 역사적 트라우마를 말하는 데에 있다. 또 추체험의 글쓰기가 단순한 상상력에 의한 이야기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소설쓰기가 오월 광주의 직접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행위였고, 그것은 산 자로서의 의무감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