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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사회개혁 전통의 감성적 기원

작성 : dang32g / 2010-03-29 00:01 (수정일: 2018-01-19 10:46)

영국 사회개혁 전통의 감성적 기원

: 러스킨(John Ruskin)의 자연과 예술

 

박우룡(전남대 호남학연구원)

 

 

<목 차>

 

 

 

I. 머리말

II. 러스킨의 자연관

III. 러스킨의 예술관

IV. 러스킨의 사회개혁 사상

V. 맺음말

 

I. 머리말

 

세계적 차원에서 보면 한국의 감성 연구는 이제 시작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성 연구는 감성에 관한 일반의 인식이나, 그 역사적 위상에 관한 이해가 어떠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가를 파악하는 과정을 우선 거쳐야 할 것이다. 즉, 감성의 본질과 역사적 역할에 관한 총론적 점검이 우선 이루어진 다음에 보다 구체적인 연구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이러한 당연한 순서를 굳이 거론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성에 관한 이해가 그 본질에 관해서나 역사적 인식에 있어서나 유감스럽게도 구체적 사실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경우에도 그러한 잘못된 인식이 오랫동안 자리 잡아 왔음을 알 수 있다. 서구 역사의 초기부터 감성은 이성보다 열등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즉, 감성은 항상 이성에 대한 위협으로 철학과 철학자에 대한 위험으로 여겨져 왔던 것이다. 그래서 고대부터 이성과 감성의 관계를 규정하는 지속적인 수사들 가운데 하나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였다. 확고하게 통제하고 있는 이성의 지혜와, 안전하게 억제되고 있거나, 혹은 (이상적으로) 이성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감성의 위험한 충동에 관한 이미지가 그것이었다. 이 때문에 고대 그리스 이후 서구사회에서 이성의 절대적인 우위를 당연시해왔다. 이러한 전통은 고대의 플라톤과 근대 초의 데카르트(R. Descartes)에 의해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아 왔다. 또한 19세기 후반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제임스(William James)는 감성은 ‘느낌’에 반드시 수반되는 ‘하나의 생리적 반응’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서구 사회에서 감성은 이성에 비해 역사발전에 별로 기여하지 못하고, 학문적으로도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주변부에 머물러 왔다는 인식이 우리 주변에 폭넓게 자리를 잡아 왔다. 우리는 18세기 계몽주의가 발생한 이후 인간의 이성이 사회개혁이나 체제의 변혁을 이끌고, 또 인간을 가난과 무지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전적으로 기여했다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 반면, 그러한 발전의 과정에서 인간의 감정적 혹은 감성적 측면이 한 역할은 거의 도외시되어 왔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인식이 올바른 것일까? 인류의 역사가 전개되어 오면서 감성은 대다수 학자나 일반인의 관심 밖에 있었는가? 그것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한 관점은 역사적 실상과 많은 차이가 나며 잘못된 선입견이다. 비록 철학의 역사가 헤겔(G.W.F. Hegel) 등에 의해 이성의 발전의 역사로 흔히 기술되어 왔지만, 철학자들은 결코 감정을 경시하지 않았다. 이미 소크라테스를 전후한 시기부터 서구의 사상가들은 감성의 본질에 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던 것이다 .

 

고대에 아리스토텔레스는 ࡔ수사학 Rhetoricࡕ에서 감정이 이성의 노예라는 관점에 반론을 제기하였다. 또 근·현대의 지배적 관점으로 자리 잡은 제임스의 감성 이론에 대한 대안도 이미 제시해 놓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스승 플라톤을 따라 인간의 영혼을 합리적인 부분과 비합리적인 부분으로 나눈다. 그러나,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부분을 완벽하게 분리시키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과 감성의 두 부분은 필연적으로 하나로 통일을 이룬다고 보았다.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우리의 감성은 지적인 경향을 띠는 경우가 많아 우리가이성(reason)”이라고 부르는 차분한 생각들보다 오히려 더 적절하고 통찰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감성은 어떤 상황을 인지하는 다소 지적인 방식을 의미한다.이것은 특히 물리적 감각에, 개인이 처한 상황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포함하는 인지적 요소를 수반하는 감정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는 것이다. 그의 견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근대적인 감각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따르는 지적 전통이 고대 이래로 계속 이어져 내려온다. 로마 시대에 스토아학파의 철학 속에서 윤리학과 감성의 결합이 발견된다. 또한 스피노자나 흄이나 칸트도 이성 못지않게 감성적 요소를 중시한다.

흄은 우리에게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열정(passions)이며, 따라서 그 감정은 윤리학과 철학의 주변부로 추방되기보다는 중심된 위치에서 존경받고 고려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철학에서 감정(passion)의 열등한 위치에 도전하고 이성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따라서 흄이 “이성은 열정의 노예이며, 또 그래야만 한다”고 선언한 것은 이성 우위의 고정관념을 파괴한 하나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성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기존의 인식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도 영국과 미국 사회개혁의 역사적 전통을 볼 때 바로 알 수 있다. 두 나라의 사회개혁에서 감성적 요소는 그 주된 동인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19세기 전반(前半) 영국과 미국의 사회개혁은 종교적인 것이었고, 문학적인 것이었으며, 사회지도층의 온정주의가 그 출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