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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시조의 감성 표현 양상

작성 : dang32g / 2010-03-29 00:04 (수정일: 2018-01-19 10:46)

정철 시조의 감성 표현 양상

 

이형대(고려대)

 

 

<목 차>

 

 

 

1. 문제의 소재

2. 16-17세기 시가관의 추이와 감성 표현의 문제

3. 정철 시조에서의 감성 형상화 방식

4. 결론을 대신하여

 

1. 문제의 소재

 

발표자는 이 글을 통해 정철의 시조를 대상으로 하여 작품에 나타난 감성의 발현 양상을 포착하여, 정철 시조가 지니는 특이성을 조선전기 시조사의 지평에서 해명해 보고자 한다.

송강 서거 4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권두환 교수는 기왕의 송강 연구가 ‘동어반복에 의한 반추만 거듭’되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인간과의 대화’를 주된 시적 관심사로 삼고 있는 송강 시가에서, 그가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말하기 방식’을 주목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송강의 작품이 다른 시조에 비해 ‘인간적 체취 혹은 인간적 계기가 물씬 풍’긴다는 사실은, 실상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간헐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또한 ‘송강 의 시편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이, 인간 본연의 성품보다는 기질적 특성이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도 이미 간취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강 시학에서의 감성 문제는 인상비평적 수준을 넘어 깊이 있게 논의된 바가 없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송강 시조에서의 감성 표현에 관한 분석은 그의 시 세계뿐만 아니라, 조선 전기시조가 지닌 미적 특질의 일 국면을 해명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시가 연구 분야에서 감성 표현에 관한 선행연구는 거의 없다. 시야를 확대하여 현대시 분야의 연구사를 더듬어 보더라도 시적 특질로서의 감성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으며, 그나마 작품에 형상화된 감성에 관한 유형론적 접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시가연구에서 감성은 감정, 또는 정서 및 정조와 대체적으로 혼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분석적 개념으로서 ‘감성’에 대한 정의가 요긴한데, 철학이나 심리학, 미학 등의 분야와는 달리 문학에서는 이러한 개념이 깊이 있게 논의된 바가 없다. 아쉬운 대로 참조할 수 있는 것은 유사개념으로서 ‘정서’에 대한 김대행 교수의 설명 구도이다. 그는 나베시마(鍋島能弘)의 4가지 유사개념, 즉 감정(feeling), 열정(passion), 정서(emotion), 정조(sentiment)에 관한 개념 풀이를 논의의 실마리로 삼아, 정서의 특질을 주체의 정신적 영역에 속하는 심리적 작용이고, 질서화되고 유기적인 모습을 띤 감정이며, 지적 요소와 결합된 것으로 규정하였다. 또한 정서의 내적 구조는 모순되는 충동의 갈등을 본질로 하되, 그것을 통어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지적 작용을 하며, 이 과정에서 윤리적 요소들이 개입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여기서 김대행 교수가 말하는 정서란 곧 상상력의 과정을 거쳐서 작품으로 표현된, ‘문학적 정서’을 일컫는다. 즉 작품 속의 정서는 ‘작중 화자의 정서’이기 때문에 작자에 의해 조탁된 정서라는 것이다. 이 논의를 바탕으로 성찬경 교수는 가장 포괄적인 의미 영역을 지닌 감성(sensibility)이라는 개념을 도출해 낸다. 즉 감성이란 지각, 감정, 정서, 정조 등을 모두 포함하며, 여기에 지적인 요소와 직관적 기능이 결합된 개념으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내재적 요소들의 구성 비율에 따라 개인이나 민족의 감성적 특성이 구분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상의 개념 설정에서 우리는 대략 감정≦정서≦감성 정도의 의미 층차를 파악할 수 있지만, 각 개념들의 내포와 외연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상위개념으로 확대되어가는 과정에서 개입되는 ‘지적인 요소’와 ‘직관적 기능’이 지시하는 바가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개념 규정이 명확하다 해도 서구적 개념들의 번역어인 이 용어들이 문예적 환경과 시학적 토대, 그리고 사유 구조와 형상화 방식이 매우 다른 고시조의 분석적 개념틀로써 적합할 지는 미지수이다.

따라서 우리는 상기의 개념 층위를 염두에 두면서 감성이란, ‘그 발현이 직접적이고 즉각적이고 항상적이라는 점에서 사유 이전의 느낌’이며 ‘마음의 작동방식을 통해서 현실적으로 표출되는 정감을 포괄하는 것’이라는 전통시대의 유학적 감성 개념을 다시금 환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사상사에서 운위되는 본연의 情이나 정감과는 달리 시학에서의 정서 또는 감성은 사물이나 사람에 부딪혀 형성되는 주체의 느낌이 미적 조탁의 과정을 경유한 언어로서 표상되며, 그것은 개인에 따라 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