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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담론공간과 ‘이성’과 ‘감성’

작성 : dang32g / 2010-03-29 00:17 (수정일: 2018-01-19 10:43)

해방 직후 담론공간과 ‘이성’과 ‘감성’*

 

임종명(전남대 사학과)

 

광범위하게 인정되듯이, 서구 근대는 ‘이성(理性)의 시대’로 표상되고 또 그렇게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서구 근대를 추동한 ‘이성’(이하 이성) 중심의 사유는 지난 세기 다양한 방면에서 도전에 직면했다. 예컨대, 프랑크푸르트 학파(Frankfurt school)는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등의 현상들이 근대(이성)의 이탈이 아니라, 유럽적 근대(이성)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성적 계몽을 통한 진보개념’에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보다 전면적인 문제 제기는 지난 세기와 금세기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에 의해 수행되었다. 즉 포스트 모더니즘은 학문과 지식의 객관성, 이를 뒷받침하는 ‘진리’의 권위를 회의하면서, 학문과 지식, 진리의 권력적 성격을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은, 동의 여부를 차지하고, 세기적 전환기에 연구자들에게 이성과 이성주의적 사유체계, 또 그에 기초한 학문과 지식, 나아가 ‘진리’ 자체에 대해 성찰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요청에 유념하면서, 본 발표는 이성과 이성주의적 사유체계, 학문과 지식, 진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이성과 이에 기반한 일련의 관념체계는 객관적인 로고스(logos)의 존재를 전제한다. 이러한 전제는 주관성의, 따라서 구체적 존재를 초월할 것을 학문함과 진리추구의 기본적 출발점으로 한다. 동시에 학문함과 진리추구는 개별적이며, 존재 구속적이며, 시간과 공간에 제한된 감정과 ‘감성’(이하 감성)을 제한하고, 이성적 사유의 산물이자 목표인 순개념에 도달할 것을 요청한다. 이러한 것은 감각과 감성, 나아가 그것들의 공간이자 주체인 개별적 인간이라는 구체적․현실적 존재 자체를 하위화(下位化)시킨다. 이러한 위계화는 나아가 지식과 진리에서 감각과 감성, 존재 자체를 배제하면서, 존재의 다양한 가능성을 억압한다. 이러한 이성주의(적 지식․진리)의 정치성은 관념적인 차원에서의 잠재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성주의의 정치성은 근대시기 실제의 역사에서 자신을 실현하고 있었다. 이성 중심의 근대 서구는 서구 자신을 이성의 구현체로, 전(全)세계의 ‘보편’으로 표상하면서, ‘감성’으로, ‘특수’로 비정(比定)된 비(非)서구세계에 대해 헤게모니를 행사하여 왔다. 마찬가지로 이성주의에 기초한 보편-특수의 이항대립틀은 일국(一國)내에서 중앙을 이성과 보편으로, 또 지방을 감성과 특수로 표상하여 중앙의 헤게모니를 뒷받침하면서, 중앙 중심의 위계질서를 구축하는 관념적(ideational) 자원으로 기능하였다. 이와 같이 이성․보편주의는 전세계적 규모에서 서구중심의 질서와, 일국적 차원에서 중앙중심의 질서를 지탱하는 관념적 자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탈(脫)중심의 시대인 21세기는 우리들에게 근대시기 이성․보편주의에 기초한 서구․중앙중심주의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나아가 서구․중앙의 특권성을 해체하는 한편 비(非)서구세계와 지방 존립․발전의 문화 자원을 ‘개발’할 것을 요청한다.

이러한 세기적 요구에 유의하여, 본 발표는 이성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 나아가 대안담론 모색의 일환으로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나타난 이성과 감성의 모습을 살피고자 한다. 이성과 감성은 근대시기 일종의 ‘대쌍적(對雙的, interfacial)’ 또는 ‘구조적 연관어’ 또는 그 개념․담론이다. 즉 이하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보듯이, 칸트적 의미에서건 헤겔적 의미에서건 이성은-오성(悟性)까지 포함해서- 항시 감성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구성되는 언어․개념․담론이다. (이것의 역(逆)도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이러한 상호 연관성은 이성과 감성을 연결시켜 파악할 필요성과 그러한 방법의 타당성을 제공한다. 이러한 것을 전제로, 본 발표는 상대적으로 감성에 대한 검토에 보다 유의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의 대쌍적․구조적 연관어인 감성의 검토가 이성(주의)에 대한 보다 풍부한 우리의 이해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감성이 ‘이성(오성)-감성’이라는 계서제(繼序制)에서 “저급”(低級)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 유념할 때, 감성의 검토는 이성주의에 대한 성찰을 보다 핍진(乏盡)한, 또한 비판적인, 따라서 보다 ‘생산적인’ 것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본 발표는 감성과 이성이 역사적으로 구성된 담론이라는 입장에서 한국근․현대사에서, 특히 해방 후 한국전쟁 이전 시기 그것들의 모습에 논의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도식적으로 이야기하면, 1920년대가 이성중심의 ‘보편주의’의 시대라 한다면 1930년대는 이성에 대한 회의에 기초한 ‘특수주의’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즉 1920년대는 윌슨(W. Wilson)의 14개조 원칙이나 공산주의운동의 전(全)지구적 진행에서 단적으로 보이듯, 이성주의에 기초한 세계 개조와 ‘인류공영’ 추구의 보편․이성의 시대였다. 반대로, 1930년대와 1940년대 전반기는 초(超)인종․민족․지역적인, 보편적인 인류, 계급 대신 개별적인 민족․인종․지역에 대한 관심이 강화된 특수주의의 시대였다. 또한 ‘근대초극’(近代の超克)론이나 ‘조선학운동’이 보여주듯이, 그 시기는 보편․이성주의에 기초한 서구근대주의에 대한 회의·비판의 시기이자, 대안 담론의 모색기였다. 이와 같은 근대 역사는 이성과 감성의 역사적 모습에 주목하는 본 발표에 유용한 경험적 자료를 제공한다.

이러한 것에 주목하여, 본 발표는 탈식민 시기, 특히 해방 이후 한국전쟁 이전 시기 남한의 담론장(談論場)에 나타난 감성의 모습을 검토하고자 한다. 한국의 탈(脫)식민지화는 기본적으로 미일의 동아시아 및 태평양에서의 패권전쟁(hegemonic war)인 ‘태평양전쟁’에 수반된 것이다. 이러한 전쟁의 성격은 남한이 전후 탈식민화와 함께 미국의 헤게모니(hegemony) 내로 배치되는 것을 결과했다. 이러한 해방 후의 역사적 과정은, 단순화하여 표현하면, 하나는 탈식민화와 민족주의의 고조, 다른 하나는 남한에서의 미국 헤게모니 구축이라는 두 가지 ‘상충’하는 흐름을 생산한다. 마찬가지로 해방 후 남한에는 미국의 시대라는 전후의 세계가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것은 끊임없이 ‘미국․서구에 대한 반란’이 시도되었던 전간기(戰間期, inter-war)의 세계에 의해 도전받으면서, 두 개의 세계가 충돌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아래에서 보듯이 이성과 감성을 둘러싼 역동적인 모습을 엮어내면서 그에 대한, 또 그것을 둘러싼 역사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가능케 해 줄 수 있다. 이러한 ‘희망’을 가지고 지금부터는 탈식민 시기 담론장에 나타난 감성과 이성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