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활동

분권 시대 횡단적 보편학으로서 감성인문학: 장소‧매체‧서사
인문한국플러스사업단

학술대회

5월소설과 부끄러움

작성 : abraxas701 / 2010-09-19 12:23 (수정일: 2018-01-19 10:29)

5월소설과 부끄러움

-공선옥의 「씨앗불」을 중심으로-

   

정명중(전남대)

   

1. ‘장벽’ 앞에서

2. 유령으로 산다는 것

3. ‘총’ 혹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열망

4. 참조점 없는 삶

5. 부끄러움의 미래

   

1. ‘장벽’ 앞에서

 

윤정모의 단편 「밤길」의 마지막 장면으로부터 이 글을 시작하자. 때는 1980년 5월 광주항쟁 최후의 날이다. 계엄군과의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야밤을 틈타 광주를 탈출하는 ‘김신부’와 ‘요섭’ 일행. 그들의 임무는 광주의 진실을 세상에 폭로하는 것이다. 독재권력이 자행한 전대미문의 폭력에 저항하다 산화해간 시민들이 불순분자나 폭도가 아님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그들은 도청을 빠져 나와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옳은 것인지 끊임없이 되묻는다. ‘요섭’은 사지에 있을 동지들을 떠올리다, 결국 자신이 족보에도 없는 비겁자가 돼버렸다며 절규한다. 그 역시 회의와 번민을 떨칠 수 없지만 ‘김신부’는 ‘요섭’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도 지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고 있는 게 아니란다. 거기에도 장벽은 있다. 그 장벽을 깨뜨려 달라는 임무가 우리에게 주어진 거야. 그걸 우리가 해내야 돼. 비록 이 밤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해도 이젠 서둘러야 한다.

 

즉 우리는 망자들을 버리고, 그저 살기 위해 도망치는 게 아니다. 장벽은 광주 밖에도 있고 따라서 살아남은 우리의 몫은 그 장벽을 부숴버리는 것이다, 라고 ‘김신부’는 ‘요섭’을 달랜다. 아니, 오히려 ‘김신부’ 자신을 그렇게 타이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때 장벽이란 자신들의 혈육을 무참하게 짓밟아버린 독재권력이다. 결국 남은 생을 걸고 망자를 ‘대신해서’ 그 권력과 싸워 승리한다면 그들은 비겁자라는 자괴감을 벗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