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활동

분권 시대 횡단적 보편학으로서 감성인문학: 장소‧매체‧서사
인문한국플러스사업단

학술대회

남고산성의 ‘만경대’에 얽힌 시 연구

작성 : abraxas701 / 2010-09-19 12:38 (수정일: 2018-01-19 10:25)

남고산성의 ‘만경대’에 얽힌 시 연구

 

정훈(전북대)

  

1. 서론

2. 정몽주와 만경대의 관계

3. 만경대의 이미지 형성과정

4. 만경대 관련시의 세 가지 양상

5. 결론

 

 1. 서론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시야가 좋고 경치가 좋은 곳을 찾는다. 하늘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하늘과 가까운 산에 오르기도 하고, 공자나 맹자처럼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 높은 곳을 오르기도 한다. 전망이 좋은 곳을 찾아서 산을 오르고, 경치 좋은 곳을 찾으면 사람들은 구경하기 좋고 머물기 쉽도록 누각·정자·대·재·당·헌 등을 만들었다. 자연과 벗하며 호연지기를 기르고, 자연의 모습을 통해 심신을 수련하고, 학우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학문을 닦았다.

신은경은 동아시아 미학의 근원으로 “풍류(風流)를 말하였다. 풍류에는 놀이적 요소, 미적인 것의 추구, 자연과의 교감에 이어 풍류개념에 내재한 본질로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속된 것·현실로부터의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로움에의 지향성’이다. 여기서 ‘자유로움’이라는 말에는 어딘가에도 속박당함 없이 마음대로 노닌다고 하는 호방불기(豪放不羈)의 요소 혹은 ‘破格性(破格性)’ 속(俗)을 벗어나 있다는 의미에서 ‘탈속성(脫俗性)’ 그리고 ‘은(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누정에는 이러한 모든 요소가 복합되어 드러난다. 그래서 누정 및 누정과 관련된 시에 대한 연구는 조선시대의 선비들의 미의식을 살펴보고 생활양식을 살피는데 중요한 수단이 된다.

본 논문은 전주 남고산성의 장대(將臺)인 만경대(萬景臺)와 깊은 관련이 있는 정몽주의 한시를 기본으로 그와 연관된 한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남고산성은 고덕산 서북쪽 골짜기를 에워싼 둘레 약 5,300m의 성으로, 전주에서 남원, 순창으로 통하는 교통상의 요지를 좌우로 지키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성문과 장대 등의 방어시설터가 남아 있다. 이 성은 901년에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도성의 방어를 위하여 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남북에 각각 장대가 있으며, 문은 동쪽과 서쪽에 있었다.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의 세 봉우리에는 각각 10㎡의 장대지가 있다. 현재 성 안에는 남고사·관성묘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만경대는 정몽주가 시를 지으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여러 시인묵객들이 찾으면서 차운시를 짓기도 하고, 주변경치를 읊기도 하였다.

특정한 장소를 기반으로, 놀이를 하고 미적인 것을 추구하고, 자연과의 교감을 추구하는 이러한 개념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 하나의 특정한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다. 결국 특정 이미지를 형성하게 되면 이번에는 특정이미지가 반대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그 장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특정이미지를 의식하게 된다. 또한 한시의 특성상 차운시는 원운시의 주인공을 추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더욱 특정이미지를 지키려는 경향이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먼저 남고산성과 정몽주의 관계를 살펴보고, 정몽주가 시를 짓게 된 과정을 알아본다. 그리고 이후에 지속적으로 나타난 차운시를 비롯하여 만경대를 소재로한 시와 또다른 차운시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