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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류큐(琉球) 사족(士族)층의 혼인에 대해

작성 : dang32g / 2010-03-28 22:03 (수정일: 2018-01-19 11:18)

목차

1. 들어가며

2. 혼인의 대요(大要): 이이나즈케(許嫁婚), 결혼연령, 혼례 등

3. 혼인에서의 규범성

4. 유교윤리의 수용: 동성불혼 문제

5. 마치며

내용

근세 류큐에서의 혼인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것은 가능한가. 즉 이것이 근세 류큐에서의 혼인의 일반적인 예라며 제시할 수 있는가 하는 말인데, 결론은 ‘아니다’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근세의 류큐왕국은 일괄해서 말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농(士農)이 엄밀하게 구별되었던 신분제 사회였고, 슈리(首里)나 나하(那覇) 등 중앙의 ‘마치카타(町方)’와 지방인 시골 ‘마기리(間切)․시마(島)’의 엄연한 구별, 미야코(宮古)․야에야마(八重山) 등의 ‘사키시마(先島)’, 이런 식으로 다양한 지표에 의해 분류된 계층사회였다.

근세 류큐의 ‘사농(士農)’ 및 ‘마치카타(町方)’, ‘마기리(間切)’ 등에 대해 약간 보족(補足)해 두겠다. 먼저 ‘사농(士農)’에 대해서이다. ‘사(士)’란 슈리 왕부(王府)의 관리층, 특히 슈리 성(首里城)이나 나하 관아에 다니는 중앙관리층이다. 근세에서는 17세기 말부터18세기 초반에 왕부에서 족보(가계도) 편집을 명 받은 관리층이다. 그 후에는 왕부가 공인한 ‘족보’에 의해 ‘사(士)’ 신분이 확정된 것으로부터 ‘계지(系持)’, 그리고 ‘유캇츄(ゆかっちゅ;良人)’로도 칭해졌다. ‘하쿠쇼(百姓)’로 간주된 ‘농(農)’은 즉 농민이라는 말이 아니라 ‘사’ 이외의 모두를 가리킨다. 왕부의 지방 지배를 담당하는 토착 지방관리도 ‘족보’ 편집은 용인되지 않아 족보를 가지지 않는 ‘무계(無系)’가 되었다. 슈리, 나하에 거주하며 수공업, 장사 등에 종사하는 사람은 ‘마치하쿠쇼(町百姓)’라고 불렀다. 지방의 일반농민이 소위 ‘하쿠쇼’이다(1).

다음은 ‘마치카타’와 ‘마기리’에 대해서이다. 둘 다 행정구획이지만 ‘마치카타’는 조카마치(城下町)인 ‘슈리’와 왕국의 항구인 ‘나하’, 그리고 또 하나, 옛날부터의 항구인 ‘도마리무라(泊村), 중국에서 온 도래인의 후예들이 사는 ‘구메무라(久米村)’, 이 네 곳이다. 사(士)는 마치카타 거주로 되어 있고, 마치카타에서는 하쿠쇼라도 가옥 지붕에 기와를 얹는 것이 용인되었다. ‘마치카타’ 이외는 시골로 ‘마기리’나 ‘시마’라고 불렀다. 문화적, 지역적인 덩어리를 갖는 십 수 곳의 마을을 구획하여 구별 짓는 행정단위가 ‘마기리’이며, 구획 지을 수 없는 작은 섬 등이 ‘시마’이다(2).

그런데 이러한 신분과 지역에 따른 차이는 유교적 윤리관의 사농, 마치카타․시골에서의 수용 차이, 침투도 차이가 되어, 족보관념, 가산상속과 연관되는 가계계승 등과도 관련되면서 혼인문제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상의 시점 역시 고려한 선구적 연구로 오쿠노 히코로쿠로(奥野彦六郎)의ࡔ오키나와혼인사(沖縄婚姻史)ࡕ가 있다(3). 오쿠노는 지방 촌락에서의 젊은이들의 집단가무 등을 통한 ‘자유결혼’과 상층 가문에서의 통제에 의한 ‘부자유혼(不自由婚)’에 대해 수많은 자료를 수집 분석하여 시사점이 많은 논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연구는 오키나와 본도(本島)의 지방, 미야코(宮古), 야에야마(八重山) 등의 시골이나 서민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모ㅡ아시비(노아소비, 모아소비)’라고 하는 농촌 젊은이들의 집단가무가 자유결혼과 어느 정도의 관련이 있는가 등등이다. 사족 층의 혼인에 대해서는 망라적으로 논해졌다고 할 수는 없어서 여전히 숱한 과제가 남겨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근세 류큐 사족의 혼인의 전체상을 개관하는 시도를 통하여 그 특징, 자리매김에 대해 생각하고자 한다. 물론 동아시아 세계의 일원으로서 이 세계가 공유하는 혼인에 관한 가치관, 윤리관의 오키나와에서의 전개, 수용 상황에 대해서도 아울러 검토하겠다.